모호한 메시지

소프트웨어가 내뱉는 온갖 메시지에 모호한 말이 들어 있으면 사용자도 골치 아프지만, 개발자도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아마 이런 모호한 말의 시초는 오래 전에 시커먼 바탕에 녹색 글자만 나오던 시절에 화면에 친절한 메시지를 보여주기에는 프로그램의 용량이 너무 커지니까 간단히 숫자를 써서 나타내던 습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게임을 웹에서 실행합니다. 웹에서 ActiveX 컨트롤을 하나 설치한 다음, 홈페이지에 달린 버튼 하나를 누르면 로컬에 설치된 게임이 실행 되거나, 게임이 로컬에 설치되지 않았다면 게임을 인스톨하는 등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테스트 때는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던 게임 클라이언트가 돌연 이상한 숫자 하나를 내뱉고 뻗어버렸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뻗은 것은 게임이 맞지만, 이상한 숫자 하나를 내뱉은 것은 게임을 웹에서 구동하도록 해 주는 껍데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에러 번호를 알기 쉽게 '99' 라고 해봅시다. 이 껍데기 프로그램은 그냥 '에러: 99 (실행에 실패했습니다.)' 따위로 다이얼로그를 하나 띄운 다음 끝나버렸습니다. 게임 프로세스가 실행되지도 않았고, 껍데기 프로그램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이 '99'번 에러는 로컬에 설치된 게임을 실행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번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발팀에서는 웬만해서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오픈을 겨우 한시간 좀 넘게 남겨둔 상황에서 현상을 만들기 위해 테스트 PC를 다시 세팅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결국 제한시간 안에 해결책을 제시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

사실은 배포 방법을 별로 고민하지 않은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지만, 웹 껍데기 프로그램이 상황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줬다면 적어도 한 시간은 절약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냥 '99' 라고 출력하지 말고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런타임 파일이 설치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따위로 메시지가 나왔다면 다른 가능성을 제쳐 두고 당장 이 원인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을 테니까요.

물론, 이 프로그램은 개발자도 봐야 하고, 유저도 봐야 하기 때문에 무턱대로 상황에 대해 친절하게 나타낼 수는 없을 겁니다. 아예 까놓고 '코드 어디어디가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었겠지요. 하지만 메시지를 조금만 더 모호하지 않게 쓴다면 이 껍데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여러 팀에서 덜 고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07/29 01:55 2008/07/2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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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romi | 2008/07/29 10:13 | 답글 | 수정

    최근 작업하고 있는 업체와 연계개발을 하고 있는데 (상대업체가 서비스 제공자고 저희는 서비스 이용자) 이런 오류메시지가 있더군요.
    "서비스가 준비되지 않았거나 구동은 하고 있지만 활성 상태가 아닙니다."
    ...
    ...
    어쩌라고...
    ...
    원칙적으로 이런 메시지는 서비스 제공자 내부 로그에만 남고 서비스 이용자에게 보내서는 안되지요. 낮은 확률일지는 몰라도 혹시라도 이 메시지를 보게 될 이용자는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울까요.
    ...
    저도 개발하면서 자세한 메시지를 남겨봤지만 대부분 사용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더군요.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것, 사용자에게 '이런 오류가 났는데 이게 뭔가요?'라는 전화를 한번이라도 덜 받게끔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답글: OpenID LogoMilfy | 2008/07/29 11:16 | 답글 | 수정

    이번에 게임에 들어가는 에러 메시지를 만들면서 느꼈는데, 메시지를 만드는 작업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나름 친절하게 쓴다고 쓰고 보면 너무 길고 읽기 어렵거나,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서 늘 봐오던 불친절하고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메시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더라구요. 장기적으로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OpenID Logo최재훈 | 2008/07/29 10:12 | 답글 | 수정

    음... 이런 것도 있지요. 프로그래머다 보니 로그를 영어로 남기는 습관도 있습니다. 한글로 남기면 더 알기 쉬운데 말이죠. 이런 건 사실 정책으로 강요해야 되요.

  • 답글: OpenID LogoMilfy | 2008/07/29 11:17 | 답글 | 수정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당장에 어제 밤에 로그를 들여다 보면서도 로그가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에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한글로 남기면 읽을 때 좀더 편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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