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6 22:50
폭력적인 이름 짓기
지하철을 오가다가 문득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봤습니다. 지하철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로 말하자면 실컷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도중인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세요'라며 아무 의미 없는 병신 같은 광고를 하기도 하고, 힘들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앞에 멀쩡한 에스컬레이터를 세워놓고서는 '전기 절약' 이딴 포스터를 붙여놓기도 합니다. 이런 포스터들을 기획한 사람의 머리속엔 쥐새끼만 들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이 포스터를 보고 좀 찜찜했습니다. 분명 그럴싸한 내용입니다. 전기를 아낀다며 꺼 버린 에스컬레이터와 발 한짝 들여놓으려니 불같이 성네는 노인네들이 가득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하철 이용을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찜찜한 이유는 이 서비스의 이름 때문입니다. '교통약자 도우미' ... 꼭 이딴 이름을 지어 넣었어야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아 그러면 화장실에 그런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머리에 쥐새끼만 든 사람들은 '아! 그럼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면 되겠군'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겁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교통약자 도우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꺼져 버린 에스컬레이터와 노친네들에게 점령 당한 엘리베이터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런데 굳이 그런 사람들을 '교통약자'라고 불러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더 편한, 더 자연스러운 이름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아무 고민 없이 정책 입안자와 기획자의 폭력성과 이 포스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없는 시선이 그대로 묻어나는 포스터였습니다.
게다가 이 포스터는 '플랫폼'에 붙어 있습니다.
